<토르소> 상. 회화관을 지나서 음악과 시를 관장하는 아홉 여신들의 상이 있는 뮤즈 여신들의 전시실에 있다. 이는 훗날 로뎅에게 영감을 줘서 <생각하는 사람>이 만들어지게 된다. 토르소 상은 넓은 등판으로 발굴 당시 사람들이 헤라클레스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헤라클레스의 몽둥이는 양팔이 없기에 알 수 없고, 깔고 앉아있는 것은 사자가죽이라 하여 그렇게 판단됐다. 하지만, 후세에 한 동물학자에 의해서 토르소 상 밑의 가죽은 사자가 아니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지며 이 작품은 그냥 <토르소>라는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팔과 다리가 없음을 안타까워한 교황이 미켈란젤로에게 복원을 명령하지만, 미켈란젤로는 토르소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하여 복원을 하지 않는다. 작품에 구멍들은 과거 상을 옮길 때 구멍을 뚫은 것.
- 도상(圖像, icon)
그 인물을 표현하는 특정 물건. 예를 들어, 헤라클레스의 경우에는 몽둥이와 사자 가죽이 손에 항상 있어야 한다. 하나라도 없을 경우, 그 작품은 헤라클레스일 수 없다.
윗 사진의 천장은 요철이 없는 그냥 그림이다. 실제로 둥근 형태의 매끄러운 천장에 그려진 그림이다. 사진을 보면 중간에 색이 좀 어두운 부분(회색)이 있다. 어두운 부분을 제외하고는 천장의 때를 제거한 부분이다. 이 역시도 이탈리아의 복원 철학을 알게 해준다. 이탈리아의 문화제 복원은 항상 복원 전의 형태를 남긴다. 무너진 벽을 다시 세운다고 해도 무너진 일부분을 그대로 둔다. 그 역시도 역사의 한 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웅장한 천장화. 시스티나 성당을 가기 전에 거치는 코스인데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는 어찌나 웅장할지 계속 두근거리게 기대감을 갖게 한다.
라파엘로의 방 중, 가장 유명한 <서명의 방>의 <아테네 학당>, 교황들이 결재를 하던 곳이다. 프레스코 벽화로 시골 출신의 예술가, 라파엘로가 4개의 서재 중 처음 그린 곳이다. 그림에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피타고라스 등의 학자들이 등장한다.
당시, 예배당의 천장화를 그리고 있는 미켈란젤로와 4개의 서재의 벽화를 그리던 라파엘로 사이의 경쟁 구도가 존재했다. 미켈란젤로가 그리던 천장화의 중간 단계를 보게된 라파엘로가 미켈란젤로에게 존경을 표하기 위해서 완성된 부분의 그림을 뜯어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얼굴(문을 통과하는 정중앙의 붉은 옷, 푸른 옷은 플라톤)을 미켈란젤로의 얼굴로 바꾸었다. 작가 본인, 라파엘로의 얼굴도 맨 아래의 오른쪽 두번째에 옆모습으로 등장한다.
- 프레스코 벽화(Fresco)
프레스코 기법은 회반죽을 칠한 뒤,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회반북의 배합이 조금만 맞지 않더라도, 그림을 칠한 반죽이 굳으며 떨어지거나, 금이 가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기법이다. 프레스코 기법 중에서도 회반죽의 건조 여부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뉜다.
회반죽이 마르고 그리는 방법과 덜 말랐을 때 그리는 방법이다. 회반죽이 마르고 그리는 방법은 쉬우나 당대에 예술가들은 마르기 전에 그리는 것을 우선으로 했다. 이유는 반죽이 마르며 물감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벽화의 때만 제거하면 그 색깔이 몇 백년이고 지속되기 때문이다.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의 벽화는 모두 후자의 방법으로 제작된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천장화를 그릴 당시, 그는 프레스코 벽화를 제대로 그려본 적이 없던 상태였다.
'- 여행 이야기 (2013)'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티칸(Vatican)의 산 피에트르(성 베드로) 성당 (0) | 2013.04.24 |
---|---|
미켈란젤로의 천장화(Michelangelo's Ceiling)와 최후의 심판(The Last Judgement) (0) | 2013.04.24 |
바티칸(Vatican), 거장의 숨결을 느끼다 (上) (0) | 2013.04.24 |
피렌체(Firenze), 이런저런 이야기 (0) | 2013.04.24 |
피사(Pisa)와 여행에 대한 생각 (0) | 2013.04.24 |